전쟁은 너무나 폭력적이고 거대해서 언제나 작고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잠식해버립니다. 우리는 그 앞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습니다. 전쟁의 시작도 과정도 끝도, 어느 것 하나 우리가 좌우할 수 있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. 전쟁을 종용하고 지시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전쟁의 정당성을 외치지만, 전쟁의 당사자는 그들이 아닙니다. 가장 약하고 평범한 우리들이죠. 그렇다면 전쟁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것일까요?
< 적 >은 거대한 담론으로부터 시작된 전쟁을 종식할 수 있는 힘을 사소하고 당연한 공감으로부터 발견하는 책입니다. 이야기는 전쟁에서부터 시작합니다. 두 개의 구덩이, 각각 한 명의 병사, 서로가 서로를 증오하고 두려워하며 그들은 서로에게 총구를 겨눕니다. 그러나 이러한 대치 상황은 외롭고 지난하고 무의미합니다. 전쟁을 지시하는 자들은 적군은 인간이 아니라 야수라고 말합니다. 죽이지 않으면 그들이 곧 나와 내 가족까지 절멸시킬 것이라고 합니다. 그러나 구덩이 밖으로 나와 발견한 적의 모습은 나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. 가족이 그리워하고, 살고 싶어하며 구덩이 속에서 외로워합니다. 너와 내가 똑같은 사람이라는 이 사소한 공감, 병사는 마침내 전쟁을 향해 이 자명한 메시지를 던집니다. 그들은 과연 구덩이 밖을 나올 수 있을까요? < 적 >을 통해 아군과 적군을 가르는 기준의 허구성을 깨닫고, “서로의 동질성을 발견하는 공감의 가능성”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.